마음의 쉼터

[스크랩] 내 연봉은 3억 6천만

대영플랜트 2013. 9. 23. 21:21

 

 

비가 내린다.

봄비.

사람들이 꽃이 피는 것을 보고 봄이 오는 소리라 하길래 

꽃이 필 때면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 귀울여 보기도 했다.

본래 꽃이 필 땐 소리가 나는데 내 가슴이 좁아서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했다.

그러나 내가 10년 가까이 꽃을 기르며 꽃과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어떤 꽃에서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꽃은 그 꽃을 피우면서 사람같은 동물처럼 유난스럽게 소리 내지 않는다.

꽃은 한 여름에도 피고 가을에도, 겨울에도 핀다.

꽃이 핀다고 봄은 아니다.

좆도 모르는 소리다.

 

농촌에서는 봄 보다 먼저 개구리들이 나와 소리를 낸다.

짝짓기를 한다.

봄이 오는 소리라 함은 개구리 우는 소리를 잘못 해석한 것일 게다.

봄은 짝짓기로부터 시작된다.

경운기, 트랙터의 통통거리는 소리가 났다면 확실한 봄이다.

 

다만, 농촌에서는 경운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방학도 끝.

경운기 소리가 잦아들 때까진 한해가 다 지나도록 날마다 개고생이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밤새도록 내리고 또 내린다.

봄비.

밭갈이를 마친 들판을 적시는 비가 내린다.

후드득 흐드득. 졸졸졸....

빗소리에서 비로소 봄이 오는 소리가 낭만적으로 들린다.

이런 날은 놀다 자고 자다 일어나 또 뒹굴어도 

아무도 게으름을 탓하지 않는다.

맘 편히 쉴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남들처럼 봄의 소리를 낭만적으로 듣게 된 것은 빗소리다.

 

 

어제 내다 넌 이불을 걷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헐~ ㅠㅠ

깜빡깜빡 잘 잊는 내 머리를 탓하다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이불 부피가 너무 커 세탁기에 억지로 밀어넣어 빨았는데 오히려 잘됐다.

빗물에 조금 더 헹구자.

 

 

촌구석에 사는 놈에게 그동안 무슨 변고나 생기지 않았을까 한 달에 서너 번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다.

구태여 오가며 만나고 점심 먹고 술자리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는 될수록 먼 데 사는 친구가 좋다.

서로 부담되니 마음만 주고 받자.

 

놈의 전화가 아니면 걱정해 주는 놈이 없어 내가 좀 더 사근사근 해야 하지만

나는 두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데 

이놈은 달리 용건도 없는데 한 달에 서너 번씩 한다.

하소연 하기론 내가 만만해서 일까?

 

지난 휴일, 서울 사는 고교동창 몇이 모여 반창회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지 꼴이 제일 초라했더란다.

목소리도 힘이 없다.

제일 잘 된 놈이 증권회사 부회장, 그 다음이 정부투자기관 감사, 병원장.....

이렇게 9명이 모였는데 맨 마지막에 있는 놈이 6급 공무원.

바로 자기였더란다.

더이상 듣지 않아도 그 심정을 충분히 알고도 남겠다.

그러게 자기 마음 다스릴 자신도 없이 동창회는 뭣하러 나가서 맘 상하노.

 

 

통화가 끝난 후 아무래도 이놈이 오늘 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며 자유낙하 실험이라도 할까 걱정됐다.

내가 전화를 했다.

만약 내가 너처럼 생각한다면,

학교 다닐 때 너보다 공부도 잘 했고, 대학도 훨씬 좋은 델 나온데다 가방끈도 긴데 

촌에서 농사 짓고 사는 나는 진즉 혀 깨물고 콱 죽었어야 했을까?

아니다, 죽더라도 촌놈답게 제조제 마시고 켁켁 오만상을 찌프리다 갔어야 했는데 여적 살고 있는 거뉘?

그래야 맞는 건데 내가 촌놈이 된 이후 사리분력력이 떨어져서 욜케 살고 있는 거뉘?

니 연봉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벌이를 하며 지내고 있는 나는 엄청시리 불행한 건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이렇게 낙낙하게 살 찌우며 살고 있는 거뉘?

그런거야?

 

 

법인카드 갖고 댕기는 놈이나 산하 직원이 수백 명이 되는 놈들은

버는 만큼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데

니 놈은 얼마나 편하냐.

무능하다고 짤릴 일도 없이 정년될 때까지 철밥통에 담기는 밥이 살짝 부실하게 보일진 몰라도

대한민국이 없어지지 않는 한 회사 문 닫을 일도, 월급 밀릴 일도 없고

일과 시간 끝나면 회사가 망하거나 말거나 걱정할 필요없이

니 일만 할 수 있는 넌 얼마나 좋은 팔자냐, 

게다가 다른 공무원들은 민원인 등쌀에 사표를 내네 마네 고민도 하는데

니 놈은 오히려 민원인들을 죄인 다루듯(놈은 검찰청 수사관이다) 큰소리 치면서 월급 받잖아. 

이 보다 더 좋은 직장이 또 어딧냐.

긍께 그 밑에 있는 나와 비교하며 죽지 말고 잘 살아 주라.

그렇게 전화해 주고 끊었다.

사실, 요놈이 갑자기 팍 죽어불면 내가 살았나 죽었나 이렇게 자주 전화해 줄 놈도 없다. ㅠㅠ

 

 

비교하며 살자면 한이 없다.

비교하면 할수록 지가 헛 살아온 것 같고 내일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살아가는 내내 긴장해야 하고 그러면 인생은 내내 피곤하다.

 

 

나도 시골로 온 첫 두 해 정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농사 좀 지으며 활동해서 지역 농협 조합장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조합장이 되면 허구헌 날 빈둥대는 저놈부터 짤라야지,

농자재 판매장과 주유소 유통구조를 바꿔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를 개선해야지,

니들은 지금이 천국인줄 알아라,

탱탱 노는 간부를 볼 때마다 그런 의지를 다졌다.

시험 봐서 되는 건 떨어져 본 적이 있지만

선거로 되는 건 성공율이 100%라 인구 4천도 안되는 면 단위에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몇 해 지내면서 포기했다.

내가 그런 그릇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할 일이 우선 심난했고,

점심은 낮 12시에 의무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도 깝깝할 노릇이고,

내 일도 못 하는데 남의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명함이 없다.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희희낙낙 잘 지낼 수 있는 건,

순전히 성공에 대한 기준이 아주 착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신선이다.

액수나 지위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스스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성공한 것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주며 사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성공한 사람이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존경을 받는 사람은 아주 성공한 사람이다.

 

 

하루를 접을 때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오늘 나는 일을 하면서 얼마 어치만큼 즐겁고 만족했나,

오늘 마을 사람들을 대하면서 얼마 어치의 진실을 나누며 행복했나,

오늘 강아지들과 눈맞춤하면서 얼마 어치의 정을 느꼈나.

하루 10만원 어치의 행복을 느꼈다면 연봉 3600만 원,

100만 원 어치의 행복을 느꼈다면 연봉 3억.

내 연봉은 과연 얼마일까.

 

 

 

출처 : 하얀미소가 머무는 곳
글쓴이 : 한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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