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집에서는 그 남자를 반대했다.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그의 아버지 직업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사귀고 있는 바로 그 남 자 자체였다.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다는 걸 부모님은 제일 싫어했다. 그래도 대학까지 나온 딸을 고등학교밖에 못 나온 남자에게 시 집보내는 게 싫다고 하셨다. 게다가 이 남자는 직장도 없었다. 그냥 자기 아버지 가게에서 일을 돕는 정도가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 게 반대의 시작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부모님의 마음에 상처까지 내면서 굳이 부모님이 반대하는 일을 저질렀을까 하는 후회뿐이 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이 남자는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멋있었다. 상식과 소양이 부 족해서 가끔은 바보 같은 소리를 좀 했지만, 그래도 속은 깊은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이 남자는 나를 사랑해줬고, 굉장히 헌신적인 남자 였다. 한 번도 기념일을 잊은 적이 없었고, 그때마다 회사로 꽃바구니를 보냈다. 나쁜 점이라면 가끔 술을 과하게 먹고 주정을 좀 부린 다는 것뿐이었다. 그 정도가 세지 않아 그냥 젊은 남자들의 객기려니 하고 몇 번은 넘어갔다. 그런데 한 번은 술 문제로 심하게 다툰 적 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전조인 것만 같았다. 그날따라 술을 많이 마신 그는 자꾸만 이상한 말을 해댔다. 자기 이전에 사귄 남자는 어떤 사람이었냐는 둥, 그 남자는 키가 컸냐는 둥, 예전에 사귄 남자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댔다. 물론 그전에도 술을 마시면 나의 남자 관계에 대해 질문하곤 했지만 이렇게 집요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와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예전에 진지하게 사귄 남 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도 오랫동안 사귄 여자가 있는데 그게 뭐 중요하냐는 식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실제는 그게 아 니었나 보다. 술만 먹으면 튀어나오는 그 질문이 이번엔 정도가 지나쳤다. 급기야는 “그래서 그 남자랑 하는 게 그렇게 좋았어? 그 렇게 크디?” 하는 말까지 나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무서운 눈빛이 되더니 내 몸에 손까지 댔다. 주먹으 로 내 얼굴을 때린 것이다. 나는 결국 눈물을 터트렸고, 혼자서 뛰쳐나왔다. 며칠 동안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문자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결국 나는 용서를 해버렸다. 그게 모든 사건의 발단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그와 결혼을 결심하고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모든 게 쉽지가 않았다. 예단 문제부터 발단이 됐다. 시부모 되실 분들이 우리 집에서 보낸 예단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사위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 도 딸자식 결혼 예단이라고 우리 부모님은 천만원을 넣었는데, 그쪽에선 그 액수가 너무 적다는 거다. 그의 엄마는 내게 전화해서 “ 니 부모님들은 우리 아들이 마음에 안 드신대니? 아니, 일가 친척들 창피해서 어디 아들 결혼시킨다는 말이나 하겠니?” 하고 노골적으로 불 만을 터트렸다. 그러나 누구나 결혼을 하게 되면 겪는 문제려니 생각하고,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혼자만 가슴에 담아두었 다. 조금 신경이 쓰이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혼식은 치러졌고, 결국 신혼여행도 가게 됐다.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뭔가 로맨틱한 밤을 보내겠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여행지에 도착한 날, 우리는 잠자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술에 취해 그냥 자버렸던 것이다. 나는 술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마음 상해하 지 않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그는 아주 작정을 한 사람 같았다. 다음날 아침에도 그는 냉랭했다. 내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 지른 것처럼 가벼운 인사를 해도 모른 척 대꾸도 안했다. 우리와 함께 온 신혼부부들과 모여 식사를 하고, 래프팅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돼 있었는데, 그는 아침도 먹지 않고 그냥 호텔 밖으로 나가버렸다. 혼자 나가서 즐길 수도 없어 나는 호텔 안에서 계속 그 를 기다렸다. 가이드한테 몇 번이나 전화가 왔지만 나는 그냥 몸이 좋지 않아서 쉬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저녁이 됐을 무렵 그가 술냄새를 풍기며 방으로 돌아왔다. 화가 난 나는 어딜 갔다 왔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가 갑자 기 “이 미친년이 어디서 지랄이야!” 하며 내 따귀를 때리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황당하고 화가 나서 나도 베개를 집어던졌다. 그의 폭행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너 같은 년은 나가서 죽어야 돼! 너 같은 걸레를 낳고도 미역국 처먹은 니 엄마가 불쌍하다, 미친년아!” 그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해가며 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따귀가 아니었다. 주먹이었다. 주먹으로 얼굴을 수십 차례 때리고, 발로 배부터 허벅지까지 다 걷어차기 시작했다. 나는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라 아직 다들 밖에서 즐 기고 있는 건지, 아무도 내 울부짖음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거의 기절 상태가 돼서 쓰러졌지만 그의 폭언은 멈추지 않았다. “너, 솔직히 말해봐. 그놈 말고 또 몇 명이랑 자봤어? 너 같은 걸레는 아예 미아리로 갔어야 하는데, 왜 안 갔냐? 거기 가면 다리 벌리고 수십 명과 매일 할 수 있는데, 후회되냐? 그리고 뭐? 지 딸년 주제 파악도 못한 채 날 마음에 안 들어한다고? 미친년아! 천만원이 뭐냐, 천만원 이! 니 걸레 빠는 데나 써라!” 몇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이드였다. 문이 열리지 않자 가이드는 호텔 직원을 불러와 억지로 문을 열었다. 호텔 직원은 급하게 나를 데리고 나왔고, 그날 밤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음날, 한 호텔방에서 눈을 뜬 나를 찾아온 건 가이드였다. 그는 나를 설득했다. 술김에 저지른 일인데 한 번 용서해주 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남편이신데…. 여긴 한국도 아니고, 경찰까지 오게 되면 문제가 커져요. 일단 남은 일정은 그냥 지내시고, 한국 가셔서 생각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정말 미칠 것 같은 나를 더 미치게 하는 그의 말에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곧바로 짐을 챙겨서 서울로 왔다. 선글라스로도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큰 멍 자국에 부어오른 얼굴. 걸을 수조차 없이 아픈 다리와 배. 죽을 힘으로 겨우 집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니 이게, 무슨 일이니.” 엄마는 울면서 그 말만 반복했다. 나는 다시 쓰러졌고 , 일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전치 4주 진단이 나왔다. 아빠는 그냥 여기서 끝내라고 하셨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어쩐지 너무 억울하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에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내 의지대로 소송을 했다. 변호사를 만났더니 8백만원을 내라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폭행당한 것이 억울해서라도 나는 법적으로 보상을 받고 싶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 다. 그의 호적에 빨간 줄이라도 그어 놓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결국 경찰서까지 가서 진술을 하게 됐다. 단순히 이혼 사건이 아닌 폭행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나는 그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과 대질 심문 때문에 다시 마주쳐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나란히 앉은 채로 말이다. 내가 진술을 마치고 나오자 그의 부모는 나에게 욕을 퍼부어 댔다. 여기저기서 “ 걸레 같은 년”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에도 나와 우리 아빠는 그렇게 몇 번이나 그들과 더 싸워야 했다. 경찰서에서, 법원에서 말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내가 얻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 힘겨운 1년간의 사 투 끝에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살인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와의 이혼을 결심한 후에야 나는 임신이 됐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도저히 그 아이를 낳아 키울 자신이 없어 낙태시켜 버렸다. 그것 때문에 나는 한동안 정신과에 다녀야 했다. 내 자신이 견딜 수가 없 었다. 어떻게 그런 남자와 결혼할 생각을 한 건지, 왜 부모님이 반대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 건지, 왜 그에게 예전에 사귄 남자에 대 해 말했는지, 왜 아이를 낙태시켰는지, 모든 것이 너무 후회스럽고, 죽고 싶을 만큼 내가 싫었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죽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다. 이혼이라는 것이 두려워 그 상태로 지냈다면 아마도 난 지금까지 후회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나를 견디게 해주는 것은 그때, 그 상황에서 바로 이혼을 결 정하고 서울로 온 것이다. 결혼을 한 사이라고 해서 그냥 용서를 했다면 지금쯤 나는 아마 살아 있지조차 못했을지도 모른다. 더 심각하고 , 더 끈질기고, 더 악랄한 그의 폭언과 폭행에 매일같이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 폭력이 어떤 것이었든 절대로 남성의 폭 력, 그것도 술에 취한 남성의 폭력은 두 번 재고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97% 최정인 씨의 선택에 지지를 보낸다. 아무리 신혼여행 당시라 해도 나 역시 당장 이혼했을 것이다. 55% 알고 보니 뱃속에 이혼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아이가 들어 있다면, 인륜에는 어긋나도 낙태를 시킬 것이다. |
![](http://cafeimg.hanmail.net/top6/planet/ic_today.gif)
![](http://cafeimg.hanmail.net/top6/planet/btn_go.gif)
출처 : 신혼여행 같아가와 이혼할수밖에 없었다
글쓴이 : 바람의고수 원글보기
메모 :
'감동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아시나요. (0) | 2007.08.23 |
---|---|
[스크랩] 사랑을 지켜주는 마음 (0) | 2007.08.23 |
[스크랩] 해바라기 사랑. (0) | 2007.08.18 |
[스크랩] 슬프네요 (0) | 2007.08.18 |
[스크랩] 來 生 에서 우리 다시 만나면 ... (0) | 2007.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