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물세살 처자와 수물네살 총각
글.그림/ 이 숙영56
일본식 사택 이다.
처자의 나이는 스물세살
송판때기 처럼 껑껑 얼어 붙은 빨래가
부러질듯 빨랫줄에 영켜있는데
간간히 불어오는 겨울 칼바람이 고드름도 달린
언 빨래들을 투닥거리며 춤추게 했다.
간짖대를 빼내면서
한놈이그 빨래들을
커다란 마대자루에 푹푹 부러지건 말건 쑤셔넣고는
처자의 손을 잡아 끌고, 가자! 라고 했다.
처자의 부모님께서
사택을 벗어나 도회지로 일 보러 나가신 틈을 밀고 들어왔다.
그놈은
세상 끝 까지
영원히 그대의 그림자가 되고 종이 되어 살겠노라고
스물세살 처자 한테 세치혀로 꼬득였다.
처자가 감시 당하는 일본식 사택 문을
혹여 도둑이 들까
염려가 되지만 미처 제대로 닫아놓을 여유도 없이
억센 손아귀로 처자의 손목을 휘어 잡고는
신작로를 향해 걸음아 살려라 하고 미친듯이 달렸다.
그놈의 돌발 행동에
처자도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부모님이 타고 계실지도 모를 버스가 뿌연 먼지를 달고
가물 가물 비포장길을 마주 달려 오건만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겨우 시외버스를 피하고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처자와 그놈이 도망놀이를 시작 했다.
사택이 절대로 안 보이는
산모롱이를 겨우 돌아설 즈음
가슴이 콩닥콩닥
목구멍에 불 타는 숨을 고르며
도회로 스며든
처자와 그놈은 서둘러 어른이 되었다.
처자는 스물셋이고, 그놈은 스물넷이였다.
08.1.27
출처 : 숙영이의 樂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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