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들아, 남편들아
에베소서 5:22~25
(들어가는 말)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한 둘은 혼인을 했고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합니다.
소는 사랑하는 사자를 위해 매일 아침 초원으로 나가 싱싱하고 맛있는 풀을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풀이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는 이에 질세라 사랑하는 소를 위해 매일 사냥을 해 맛있는 살코기를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그러나 참을성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둘은 마주 않아 이야기를 합니다. 소와 사자는 다투었습니다.
둘은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은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였습니다.
사람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인이 되면 대체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룹니다. 결혼을 하면서 바라는 소원은 한결같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꿈결같이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깨어지지 않았더라도 속으로는 실제로 깨어진 채 견디는 가정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오늘은 성경을 통해서 가정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님의 교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가정의 기초는 부부
가정의 행복을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 됨을 인정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정의 개념을 부모와 자식을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天倫, 하늘이 만든 관계 사이의 윤리)’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부부의 관계는 ‘인륜(人倫,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인륜 가운데에서는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했지만 여전히 인륜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부의 관계를 인륜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19:4~6)
성경에서는 분명히 부부의 만남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부부라고 믿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도 부부간의 관계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줄 다 압니다. 그러나 부부간의 관계에 관한 하나님의 원리를 잘 모르면 엉뚱한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려고 합니다. 젊은 부부들의 대화에서 서로 상대방을 길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경우를 봅니다. 부모들도 뒤에서 그것을 사주합니다. “초반에 확실히 잡아라. 그래야 평생이 편하다.” 그러나 그 정신 때문에 수없이 많은 가정이 파괴되어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가정을 이루고 사시는 어른들이나 앞으로 가정을 이루게 될 청년 청소년들 모두가 가정에 대한 바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보시고,
사람이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not good)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시고 하와를 지어 함께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결혼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사회에 주신 첫 번째 선물이 바로 가정이며,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아이디어입니다. 사람들이 나이가 차면 그냥 결혼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 때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하셔서 이 짝을 만나게 해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감탄하며 사랑할 때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둘이 한 몸을 이루어 돕는 배필로서 서로 상대의 불완전함을 메꾸어 주고 함께 더불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는 적절한 타협과 양보가 미덕이라는 사실은 믿지 않는 사람도 압니다.
어떤 사령관이 마누라에게 실컷 혼나고 출근했는데, 아내한테 당한게 여간 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분풀이로 부대원들을 전부 집합시켰어요. 그리고 붉은 깃발 푸른 깃발을 양쪽에 세워두었습니다. 그리고는 명령했습니다. 자기가 공처가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붉은 깃발 아래에 모이고, 스스로 공처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내 앞에서 남편으로서 늘 당당한 사람은 푸른 깃발 아래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조금 후 모든 사람이 붉은 깃발 아래 모였는데 유독 한 병사만 푸른 깃발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사령관이 그가 대견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자네는 어찌하여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가?” 그 병사가 대답합니다. “장군님, 저는 아내가 절대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라고 해서 여기에 서 있습니다.”
적당하게 양보하고 져주는 것이 가정의 평화에 유익하다는 것만을 이야기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주장하고 쥐고 흔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하나님의 질서를 깨뜨리고 자기 소견대로 선악과를 먼저 따먹고 남편까지도 따먹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우리의 죄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배우고 실천할 때 우리는 온전히 천국의 백성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아담은 세상을 다스리고, 가정을 다스리는 역할을 맡았고, 하와는 돕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가정의 질서입니다.
2. 가정의 질서는 복종과 사랑
오늘 본문 에베소서 5:22~25부터에서 보면 아내의 남편에 가장 기본적인 덕목은 복종이라고 했고, 남편의 아내에 대한 기본적인 덕목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납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분이 많습니다. 여자는 남자와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구약 성경에서도 그 근거를 찾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라고 하셨으니, 곧 아담을 위하여 하와가 창조되었으니, 남자를 위하여 여자가 창조되었으니 여자는 남자를 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근거는 남자는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셔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는데,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재료로 해서 만드셨으니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이 내용들을 약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는 말씀에서 돕는 배필이란 말이 영어 성경에는 helper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는 보혜사로 번역된 말입니다. 성령님이 helper입니다. 곧 도움을 주는 사람은 반드시 보조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돕는 경우도 있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돕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움은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지 우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배필이라는 번역이 적절한데, 동반자, 반려자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짝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젓가락이 짝을 이루려면 똑같아야 하고, 신발이 짝을 이루려면 똑같아야 합니다. 부부가 배필이 되는 것은 똑같아야 합니다. 성격이 다르고 배운 것이 다르고 배경이 다르지만 인격적으로는 동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부는 동등한 인격의 두 사람입니다. 또 “그를 위하여”라는 말에서도 일방적으로 여자가 남자를 위한 존재라고 이해하기 쉬운데, 이 ‘위하여’는 NKJV에서는 “comparable to"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비교할만한, 상응하는“이라는 뜻입니다. 일방적 종속의 의미보다는 거기에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또는 ”동등한“이라는 의미입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알맞은 짝’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갈빗대로 지었다는 것도 오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실 때는 흙으로 만드셨고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와도 흙으로 만드실 수 있었지만 원래 한 몸에서 두 사람을 만드시기를 원하셨고 늘 한 몸임을 기억하고 한 몸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뼈를 사용하시더라도 머리 뼈로 만들어 지배자로 세우지 않으셨고, 발가락 뼈로 만들어 짓밟히게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가슴, 심장에 가장 가까운 갈빗대를 사용하셨습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고, 마음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 세워주고 격려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근거로 창세기 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동등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남성우월주의는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씻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장황하게 드리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의외로 고루한 것이 많은데 나름대로 성경적 근거를 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성경을 엄밀히 잘 이해하지 못하여 그렇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근에 약간 달라졌지만 아직도 많은 교단에서는 여성을 목회자로 안수하지 않습니다. 천주교는 물론이지요. 여성을 강단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성찬식을 하는데 여성이 보좌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잘못된 사상입니다.
창세기 2:23절에서 아담은 말합니다.
“이는 내 뼈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나의 신체의 일부분에서 나왔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소중하다는 뜻을 표현한 말입니다. 왕중의 왕이란 말처럼 뼈중의 뼈, 살중의 살은 best를 말합니다. 나의 분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평등한 지위,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 동등하게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남자와 여자가 한 가정을 이룰 때 질서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목숨을 내놓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그래도 이 원칙은 납득하고 수긍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도 뉴스에 보니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런 기사는 놀랍지도 않을 정도로 흔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종하라는 것입니까?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는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모델이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어떤 관계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구원을 받게되어 죄인이면서 의롭다고 인정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생명을 얻었으므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자기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가 선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주신 것처럼 남편들이 아내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사랑할 때 가정이 성립합니다.
그 가정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은 노예적인 굴종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순종입니다. 그 모델은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성자 하나님으로서 삼위일체 내의 질서가 있으셨고 역할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서에 순복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노예처럼 굴종하게 하시지 않으셨고, 로봇처럼 하나님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자유 의지를 주셨고, 자발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깊은 사랑을 나누면서, 하나님이 위임하신 일,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수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도 인격적인 복종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이 진리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질서가 존중받아야 합니다. 개인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쉬운데 교회가 복종하는 것은 좀 더 복잡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믿음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많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그리스도가 주신 진리의 방법대로 푸는 것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다음으로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잘 풀어 성숙한 교회의 존재양식being을 보여주는 것이나 교회의 사명 doing을 보여주는 것이나 모두 그리스도의 진리에 순복할 때 가장 바람직합니다. 한국의 교회들을 보면 목회자가 매우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이끄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기에는 매우 일사불란하고 좋아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카리스마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세속적인 조직능력에다 말씀 가운데 적절한 구절들을 조합하여 억압적으로 이끄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질서가 아니면 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전에 어떤 분들이 자기 교회에 오지 않는다고 “조직의 쓴맛을 볼래?”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직폭력배의 논리입니다.
교회는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질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에 근거하여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다소 어수선하여 보이더라도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편이 더 좋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질서에 따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조건 기름부음 받은 자를 순종하지 않으면 벌받는다거나 복받지 못한다고 하여 굴종적으로 따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신앙관과 일치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입니까? 둘 다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진정으로 뜨겁게 사랑하며 목숨걸고 살아가는 그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라고 인정하시면 그 인격적인 판단으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내 판단에 맞으면 따르고, 내가 싫으면 따르지 않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종속되어 노예처럼 굴종하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가정의 질서를 위해 분담한 역할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가 한 남자에게 노예적 굴종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순응하여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항상 매개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가 항상 함께 계십니다. 그분을 중심으로 가정을 이루고, 그분의 마음으로 상대를 서로 섬기고 세우고 위하는 그런 가정이 되어야 겠습니다.
남편이 목숨을 걸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그 남편을 높여주며 복종하면서 슬기롭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맺는 말)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타락하기 전 하나님이 맨 먼저 만드신 아담과 하와 부부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가정을 회복하기를 소망합니다. 부부의 사랑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단지 남자가 여자를 위한 사랑, 여자가 남자를 위한 사랑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사실도 깨닫습니다. 우리 가정은 우리가 좋아서 만난 것으로 끝나는 가정이 아니며,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아내를 만족시키고 남편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가지신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족한 상태는 완벽한 상태입니다. 성경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표현된 상태는 아무런 결점이 없이 온전한 상태입니다. 이것을 이루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옳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만나게 해 주신 짝, 돕는 배필을 서로가 헌신하고 위하여 세움을 통해 서로가 발전하고 성숙하며, 아름다운 사랑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은 아내는 남편을 교회가 그리스도를 복종한 것처럼 복종하는 것이요,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가정에서 부모의 그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죄와 악이 많은 이 세상에서 묻혀온 죄나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할 수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을 바탕으로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동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노무현 전대통령이 이명박에게 쓴 글~ (0) | 2009.05.24 |
---|---|
[스크랩] 보람있는 삶 (0) | 2009.05.24 |
[스크랩] 어느 가난한 부자 이야기 (0) | 2009.05.16 |
[스크랩] 미안해요 내 욕심때문에.. (0) | 2009.05.15 |
[스크랩] ♧ 돌이킬 수 없는 것들... (0) | 2009.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