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삶

[스크랩] 정사, 전혀 다른 남녀의 머릿속(86)

대영플랜트 2011. 12. 1. 15:35

 

 

 

정사, 전혀 다른 남녀의 머릿속

 

침실에서 남자는 조급하고 여자는 느긋하다.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남자는 섹스가 급해 세상
모든 것은 줄 것처럼 속삭이고,

급하지 않은 여자는 섹스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천천히 집요하게 유혹한다.
 

<헤라클라스와
옴팔레>1730년경, 캔버스에 유채, 90*74cm, 모스크바 푸슈킨미술관 소장
 

침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그림으로는 부셰의

<헤라클라스와 옴팔레>가대표적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이야기 중

정사 장면을묘사한 작품이다.

침대에서 헤라클라스는 옴팔레의 풍만한 가슴을 움켜잡고

열정적으로키스를 한다.

 

옴펠레의 다리가 헤라클레스의 허벅지에 놓여 있는 것은 정욕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의 노예임을 나타낸다.

 두 눈을 감고황홀경에 빠져 있는 두 남녀의 관능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프랑수아.
부셰<1703~1770>는 이 작품에서 육체의 욕망을 찬미했는데, 음화를 용서하지
않는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큐피드와 헤라클레스를 상징하는 사자가죽, 옴펠레의
물레를 그려 넣어 신화의 한 장면을 나타냈다. 

 

 

 

<모델과
자화상>1927년, 나무에 유채, 62*76cm, 런던 데이트갤러리 소장

사랑받기 위해,

혹은 사랑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섹스 가 자체에서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도 섹스를 한다.

사랑보다는 섹스에 매료된 남자와 여자를 그린
작품이 샤드의 <모델과 자화상>이다.

 

이 작품은 섹스를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가슴털이 다 드러나 보이는 녹색 셔츠와 여자를
바로보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이 특징이다.

 여자는 벌거벗은 채 누워있고, 남자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여자의 음부를 가리고 있다.

붉은색 스타킹과손목에 두른 검은 리본은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부각시키며,

여인 뒤로 화가를 향해
피어 있는 수선화 한 송이가 두 사람의 성적 관계를 암시한다.

흩뜨려진 침대 시트는격정적인 섹스를 짐작케 하는 반면,

엇갈린 시선과 냉담한 표정은 사랑 없는 섹스를의미한다. 

 

크리스티안.
샤드<1894~1982>의 대표적인 이 작품에서 고집스러워 보이는 여자 뺨의 칼자국은
정열의 상징이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정열과 소유를 표시하기 위해 애인의 얼굴에
상처를 낸다고 한다.

 

 

<남과
여>1900년, 캔버스에 유채, 115*72cm, 파리 국립미술관 소장

섹스가 끝나는 순간부터 남자는 느긋해지고 여자는 급해진다.

남자는 여자를 소유했기 때문에
급할 것 이 없고, 여자는 어떤 것도 소유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진다.

 남자와여자의 섹스 후 감정변화를 그린 작품이 보나르의 <남과 여>다.

 기묘한 구도로섹스 후 남녀의 대립된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그림을둘로 가르는 가리개 사이로 남자는 옷을 입기 위해 서 있고

 여자는 침대 위에서 고개를숙이고 있다.

화면을 이등분하는 가리개는 사랑의 끝을 암시한다.

 

피에르
보나르(1867~1947)의 이 작품에서 가늘고 길게 표현된 남자의 표정에 침울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통통한 몸매의 여자 표정엔 후회의 빛이 엿보인다.
보나르는 섹스 후 남자의 감정을 옷 입기 위해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룰라>1878년,
캔버스에 유채, 175*230cm, 보르도미술관 소장
 

 

섹스는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행위다.

 삶의 마지막 정사를 다룬 작품이 게르벡스의<룰라>다.

이 작품은 알프레드 뮈세의 <룰라>라는 소설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재산과 사랑을 잃은 룰라가 자살하기

 직전 매춘부의 나눈 정사를 다루었다.

 

게르벡스는
통속적인 주제의 이 작품을 원작과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화면 정면에 흩어져 있는 옷들은 격렬한 정사를 말해주며 화면 뒤에 남자를 배치한
것은 남자의 심리를 소설 원작에 충실하게 표현한 것이다. 

 

알리게르벡스<1852~1929>는

이 작품을 1878년에 공개했으나 당시 파리 부르주아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출처 : 성클리닉
글쓴이 : 석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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