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한잔할까?” 유부남이 끈적하게 말을 걸어올 때(3)
“우리 술 한잔할까?” 유부남이 끈적하게 말을 걸어올 때(3)
돌아보니 서른 즈음이야말로 ‘장미 같은 나이’란 생각이 든다.
가장 화려하고 섹시하게 피어 있지만 사방팔방 아찔한 가시들이 돋아 있는 꽃 장미!
수많은 유혹과 불공정한 대우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도록 잘 설계된 꽃 말이다. 내 기억 속 ‘끈적한 유부남’들은 서른 무렵의 여자들을 잠시 잠깐의 유희를 위해 스쳐 지나가도 크게 상처받지 않을 농익은 여자로 정의하는 듯했다.
적지 않은 연애 경험으로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난 여자,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열정적인 여자,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단계의 여자라고 말이다.
‘비록 우리가 하룻밤 유희를 즐긴다 한들 그 결정은 네가 한 것이니 현명하게 대응할 줄 알 테고,
지금까지 이런저런 남자들을 만나며 남자의 속성에 대해 어느 정도 깨우쳤을 테지’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듯했다.
때문에 만만하고 도발적이고 흥미로운 대상이 바로 서른 무렵의 여자들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미친 유부남’들은 서른 즈음의 싱글 여성만큼 안정적이되 도전적인 유혹의 대상은 없다고 공공연히 떠든다. 정말 미친 것이 틀림없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수컷이란 동물은 암컷에 비해 미개하고 부족하니 그들이 욕망하는 세상이란 애초 불가능하다고 치자.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꼬임에 홀랑 넘어가는 유약한 여자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유부남과 교제하는 싱글 여성들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공간엔 ‘유부남과 사귀고 있는 여성’을 위한 카페들이 꽤 여러 개 존재하고, 그중에는 설립 연도가 2001년으로 상당히 오래된 곳도 있다. ‘
유부남을 사랑한 미혼녀들’이나 ‘금지된 사랑’ 등의 이름으로 개설된 카페가 바로 유부남과 만나는 미혼 여성들의 활동 구역인데,
이곳의 회원 수는 자그마치 2천 명이 넘는다.

위태로운 만남은 목숨도 갈라놓을 수 없는 위대한 것으로 변질되곤 한다.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신념에 자신을 가두고 강하게 설득하는 걸 즐긴다.
한마디로 세상이 반대하는 만남인 만큼 우리 둘은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정당화하며 너무 늦게 인연을 점지해준 하늘의 장난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첫 단추를 잘못 꼈으니 이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부인과는 별거 중이고, 곧 그 관계를 정리할 거라고 했어요. 마음이 편하진 않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해요. 우린 그저 너무 늦게 만난 게 아닐까요?”
실제로 유부남과 교제하고 있는 한 여성의 고백이다.
인정한다. 유부남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소유할 수 없는, 갖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미칠 것 같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한 여자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유부남은 싱글 남성보다 정제되고 정돈된 분위기를 풍기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편이다.
그뿐인가! 별것도 아닌 일에 토라져 핸드폰을 꺼놓는 속 좁은 어린 남자들보다 훨씬 자상하고 이해심도 깊다.
어린 찌질이 남자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진정한 남자다운 포스도 느껴진다. 그렇기에 더더욱 애틋한 것이다.
금지된 것을 향한 갈망, 세상이 허락지 않는 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결국 위대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비합리적 신념에 자신을 가두는 건 아닐까?
혹 그대가 이런 사랑에 빠져 있다면 조용히 자신의 사랑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당신을 질타하며 ‘정신 차리라’는 훈계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대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위로를 건네며, 아직 어리고 순수한 당신을 꼬드긴 그 유부남이 나쁘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싶다.
사랑이란 변하기 마련인지라 평생을 두고 열렬히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이를 다른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도 내어줄 수도 없다.
또한 사랑이란 시작과 마무리 모두가 아름다워야 진정한 사랑이다.
그러니 금지된 사랑에 빠지려는 그대여! 당신의 사랑이 위의 모든 조건들을 충족했다 말할 수 있는가?
바쁜 일상에 치여 후배의 고백을 잠시 잊은 채 살아가던 어느 날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언니, 나 그 유부남하고 끝냈어. 내가 총 맞았었나 봐.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이 시간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할 것 같아. 그 남자 지갑에 꽂혀 있던 사진 속 어린 아들한테도 그렇고. 양심에 찔리는 만남은 나쁜 만남 맞지? 그래서 다 정리했어. 속이 후련해.”
후배의 이야기에 내 속도 후련해졌다. 나쁜 만남은 나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서른 즈음의 그대들을 끈적하게 유혹하는 남자가 있다면 나쁜 놈이니 상대도 하지 말자.
자칫 끝이 지옥이라도 같이 가고 싶은 미친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