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2탄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쿠테타!
우리나라 역사상 성공한 쿠테타는 많다.
물론 쿠테타가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왕조 시대에는 쿠테타가 백성들의 의지가 담긴
변화와 개혁 그리고 혁명일 수도 있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우리나라 역사상 성공한
가장 오래 된 쿠테타는 고구려 연개소문쿠테타이다.
그 뒤 통일신라시대 때는
왕이 몇 년마다 바뀌는 쿠테타가 수 십년간 이어졌고
후삼국 시대 때 궁예에 대한 왕건의 쿠데타로
고려가 건국되었다.
고려시대 무신의 난을 거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조선이 건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방원의 두 번에 걸친 왕자의 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중종반정에 이어
드디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쿠테타인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가 쫓겨났다.
현대에 들어서 박정희의 5.16쿠데타,
전두환의 12.12 쿠테타가 있었다.
이상 열거한 것 중에 빠진 것이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 성공한 쿠테타들이다.
내가 인조반정을
우리나라 최악의 쿠테타로 꼽는 이유는
인조반정은 우선 명분이 너무 약했고
그 쿠테타로 인해 당시 백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 뿌리깊은 오도된 이념을 심어
그런 잘못된 행태들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조 개인적으로 행한 행위들도 최악이다.
우선 인조반정 주체 세력은 광해정권에 대해
3가지 명분을 걸고 쿠테타를 일으켰다.
첫째, 무리한 궁궐 증축으로 민생도탄
둘째,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후금과 화친
셋째, 폐모살제 즉 인목대비를 폐하고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것이다.
첫째는 광해가 조금 무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임진왜란으로 거의 파괴된 궁궐을
왕실의 위엄과 한나라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증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는 뒤에 더 자세히 쓸 것이고
셋째는 잘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왕조시대의 권력다툼 정치적인 문제로
조선왕조에서 흔해 빠진 일이었다.
사실 인조반정 주축인 서인세력은
두 번째 이유인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것을
쿠테타 제일 큰 명분으로 삼았다.
지금 눈으로 보면 광해 최고 외교 치적을
쿠테타 명분으로 삼은 것이다.
물론 거기에 당시 집권세력인 대북세력의
권력독주에 제동을 걸기 위한 서인집단의 권력욕과
광해정권의 부자증세 서민감세 같은
대동법 실시로 양반들 기득권 침해에 대한
불안이 더 해졌다.
권력욕은 어떤 쿠테타라도 기본 요건이자
필수 조건이기에 탓하지 않겠다.
문제는 사대주의와 숭명주의에 빠져 버린
쿠테타 주축세력 서인세력의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함과 어리석음이다.
그들의 무지하고 오도 된 숭명주의 이념으로
임진왜란으로 피폐될대로 된 조선에
30년도 안되어 안해도 될 정묘, 병자호란을 불러들여
일반 백성 수 십만명을 죽이고
또 수 십만명을 청나라로 끌려가게 했다.
게다가 국가적 재산상 손실은 물론
많은 소중한 문화재가 불탔고
왕의 삼전도 굴욕으로 국가적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다.
사실 정묘,병자호란은 인조반정 없이
광해의 정책이 계속 지속되었다면
안해도 될 전쟁이었고
당시 대제국이 되어가던 청의 선진문물을 받아 들여 조선이 변화와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전쟁이후에는 더 가관이었다.
쿠테타 주역인 서인세력들은
자기들이 끌어들여 백성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전쟁에 대한 어떤 참회나 반성없이
이미 망해버린 나라에 대한 숭명주의를 넘어서
소중화주의를 부르짖으며 북벌론을 외친다.
북벌론!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그럴싸한 주장이다.
하지만 당시 북벌론은
고구려의 잃어버린 땅을 찾자는 것 보다는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자는
지금의 이념 싸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말로만 그럴싸한 북벌론을 주장하면서도
이리저리 쪼개 진 당파싸움으로 여념이 없었고
당시 우리나라 지도층이라 할 수있는
사대부 정신세계에 형식에 빠져버린
유교주의와 사대주의를 깊숙히 심어 놓았다.
그 뿌리 깊은 정신들이 지금의 우리 지도층에도
머리 속 깊숙히 박혀 면면히 내려 오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인조는
자기대신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수많은 고생을 다하면서 청나라 선진 문물을 보고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사고를 가지고 돌아 온
큰아들 소현세자를 질투심에 독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며느리, 손주들까지도
죽여버린 비정한 부모였다.
어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먼저 개방 개혁할 수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조의 자식도 죽여버리는
눈먼 권력욕때문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인조반정은
당시 백성들에게는 두 번의 전쟁을 끌어들여
엄청난 민폐를 끼쳤고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는 우리나라 지도층 에게
겉만 번지르한 오도된 유교 체면주의와
사대주의적인 정신상태를 깊숙히 각인을 시켜놓은
우리나라 최악의 성공한 쿠테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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