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사 하느라 정말 애썼어.”
수고한 아내에게 감사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아내 얼굴이 환해진다. 금세 아내가 대꾸한다.
“자기도 수고했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고, 고마워”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격려했다. 그런데 아내가 다시 한 번 강조해 말한다.
“자기 일이 아니라 자기 일처럼 도와줘서 고맙다고. 흐흐흐”
그때서야 난 아내 말에 뼈를 발견한다.
그렇다. 이사가 아내에게는 온전히 자기 일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이사는 아내의 일을 돕는 정도였다.
어디 그게 이사뿐이겠는가? 아내는 늘 불만이었다. 어떻게 집안일을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지 가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우린 그저 돼지일 뿐이었다. 영국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 중에 ‘돼지책’이 있다.
맞벌이 가정 회사 일에, 집안일에 홀로 바쁜 아내에게 두 아들과 남편은 그저 꿀꿀거리는 돼지일 뿐이다.
결국 아내는 가출하고 남은 가족들은 집을 돼지우리로 만들어 놓고서야
아내 덕분에 그 가정이 온전히 유지되었음을 실감한다.
결국 가족들은 집안일을 자기 일로 여기게 되고 아내는 돌아와서 설거지 대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자동차 정비를 한다는 내용이다.
우린 처음부터 돼지였을까? 아니면 돼지로 만들어졌을까? 나 역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난 늘 서운했다.
좋은 남편이고 싶었다. 집안일을 나름 잘 돕는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나를 착한 척이라며 거부했다.
잘 돕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했다.
자기 일인데 어찌 자기 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노예 부리듯 하는지 모르겠다며,
때로 집안일에 치이고 힘들 때는 한탄을 늘어놓았다.
난 항변했다. 내가 시킨 적 없다고. 단지 아내 스스로 좋아서, 못 견뎌서 한 것뿐이라고,
정 힘들면 가사도우미를 부르면 말끔히 해결 될 일인데 왜 하루를 힘들게 사는 내게 집안일까지 요구하느냐고 따졌다.
그게 아내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되었다.
아내는 청소하고, 요리하고 하는 일을 절대 남에게 맡길 수 없다고 한다.
내 가족이 쉬고 잠들 곳을 자기 손으로 깨끗이 하는 숭고한 일이라고 믿는다.
내 가족 입 속에 들어갈 것인데 어찌 남의 손에 맡기겠냐며 본인의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내와 나의 가장 큰 차이이다. 난 결과가 중요했다.
누가 어떻게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깨끗한 집,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먹거리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아내는 과정이 소중했다.
요리를 하며, 집안을 정돈하며 그 과정에 가족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집안일을 하지 않는, 대충하는 우리는 가족 사랑이 없거나 부족한 존재라고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아내가 변기 청소를 부지런히 하는 덕분에 우리는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다.
결국 누군가의 노력이 있기에 그걸 우리가 누릴 수 있다. 그 노력한 자의 수고를 알아주고 고마워해야 한다.
그의 애씀이 단지 돈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정성이 들어간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노력이 일방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
이것은 가정 살림이나 사회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결국 함께 사는 사회에서 일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그 몫을 누가 얼마큼 누릴 것인지 공평하게 결정될 때 그 사회가 행복하다.
소모품으로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대충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 속에 담긴 사회 구성원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때
그 일은 힘겨운 노동을 넘어서는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자꾸 그것을 돈으로만 환산해서는 안 된다. 돈으로 계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발견하고 그것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
그럴 때 아내의 피로가 조금이라도 풀릴 것이다. 물론 그런 립서비스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서는 안 된다.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뒤늦게 세탁기 돌리는 법도 배우고, 분리수거하는 요령도 터득하고 있다. 그런데 잘 안 된다.
서툴다. 무엇보다 힘들다. 이 일을 이십 년 가량 묵묵히 해온 아내에게 새삼 미안하고 고맙다.
아내는 이사를 꿈꾼다. 혼자만의 공간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가족이 때로는 무거운 짐이란다.
그 짐 훌훌 내던지고 그냥 혼자이고 싶단다. 아내가 이사를 했다.
우리들도 물론 함께 이사를 왔다. 그런데 다음에도 그럴 수 있을까 싶다. 그냥 아내만 이사를 했다.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아내의 꿈을 좌절시키기 위해 어젯밤 미처 설거지를 못하고 지쳐 쓰러져 잠든 아내를 대신해 주방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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