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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낭만..울진의 겨울바다/깊고 넓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등기산공원·스카이워크 오르자 청정 바다와 푸른 하늘 내품에/'커피 난 모금'선 여유 한잔/망양정 인근 촛대바위 포토 명소/비구니 사찰인 불연사 고즈넉/왼쪽 산 정상엔 부처바위 전경 연못에 비처 '데칼코마니'/대웅보전 떠받친 거북이도 눈길
‘친구가 원수보다 미워지는 날이 많다… (중략) … 멀리 동해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시인은 바다를 보며 남의 티끌만 한 잘못을 맷방석만 하게, 동산만 하게 부풀리는 자신을 질책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억센 파도로 다스려 바다의 너그러움을 품어보려 한다. 울진 후포항 겨울 바다에 섰다. 바닷가에 세워진 신경림의 시비 ‘동해바다 후포에서’.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을 파고든다. 나는 어땠는가.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겨울바람에도 낯이 뜨거워진다.
#겨울바다 그 쓸쓸함과 낭만에 대하여
겨울바다는 쓸쓸하다고 한다. 텅 빈 해변에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만 끊임없이 밀려오니 삶의 덧없음도 느껴지기 때문일 테다. 실제 발자국 하나 없는 백사장을 걷다 보니 세상에 나 혼자인 듯 외롭다. 하지만 올해 겨울바다는 쓸쓸함만을 담지는 않는다. 유난히 포근한 날들이 이어져서일까. 고개를 들어 멀리 수평선을 바라본다. 겨울같지 않은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니 바다와 하늘의 푸름은 유난히 선명하고, 곧 봄이 올 듯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가수 유영석은 ‘겨울바다’에서 낭만을 노래했나 보다. “겨울 바다로 그대와 달려가고파/ 파도가 숨 쉬는 곳에/끝없이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넘치는 기쁨을 안고♩♬∼”
바다는 겨울에 더 또렷하게 짙고 푸르다. 차가운 공기 덕분에 해무가 거의 없어 아주 깨끗한 푸른색을 즐길 수 있다. 빼어난 절경으로 가득한 동해에서도 울진은 겨울바다를 즐기기 좋다. 해안도로 덕분이다. 동해바다와 장대한 태백산맥의 줄기를 양쪽에 모두 거느리고 있어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 손꼽힌다. 특히 후포항구에서 북쪽으로 달려 망양정까지 이르는 35㎞ 구간이 절정이다.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바다는 멀어졌다 다가왔다를 반복하며 겨울바다의 낭만을 귀에 속삭인다.
여행은 후포항에서 시작한다.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다. 등기산 공원과 스카이워크에 오르자 푸른 동해가 한눈에 펼쳐진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저 멀리 수평선까지 선명한 푸른색을 드러낸다.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바다와 하늘을 즐기는 게 얼마 만인가. 이래서 겨울바다로 가나보다. 그래도 겨울인지라 바람은 사납다. 바다앞 갯바위까지 이어진 도로를 걷다 방파제를 때리는 거센 파도의 파편에 그만 옷을 흠뻑 적시고 말았다.
객기를 책망하며 인근 카페 ‘커피 한 모금’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에 옷을 말린다. 카페 앞 하늘색과 빨강색으로 칠한 푸드트럭이 바다와 잘 어우러진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주인장은 지난해 8월 푸드트럭으로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몰리면서 작은 카페까지 열었단다. 스페셜티 원두를 쓰며 샷 하나를 추가하니 깊은 커피 향이 겨울바다의 낭만을 더한다.
월송정을 향해 북쪽으로 길을 달린다. 15분 정도 지나면 월송정교를 지나기 전 남대천과 동해가 만나는 월송정유원지 인근 바다에 닿는다. 갯바위를 때리며 밀려드는 파도는 하얗게 부서지며 아무도 없는 넓은 모래사장을 뒤덮는데 마치 눈이 온 듯 새하얗다. 신발을 적실 듯 다가왔다 멀어지는 포말과 ‘밀당’하며 해변을 달리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관동팔경 월송정과 망양정의 겨울바다
울진 해안도로에는 관동팔경 중 두 곳이 있는데 월송정과 망양정이다. ‘월송(越松)’은 ‘솔숲을 날아 넘는다’는 뜻이다.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곳에서 빠르게 말을 타고 다니며 달빛을 즐겼는데 마치 신선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단다. 달빛과 어울리는 솔숲(月松)으로도 불린다.
월송정에 오르자 은빛 모래밭과 바다에 잠길 듯 뻗어나간 울창한 소나무숲, 쪽빛 바다가 절경을 이룬다. 월송정까지 이르는 소나무숲 바닥은 여러 겹의 솔잎으로 덮여 푹신푹신하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포근한 어머니의 품같다. 울창했던 송림은 일제강점기에 모두 베어져 황폐해졌는데 1956년 월송리 마을에 살던 손치후가 해송 1만5000그루를 다시 심어 소나무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다시 완성했다.
망양정으로 가는 길에는 대풍헌(待風軒)을 만난다. ‘바람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멋진 이름이다. 조선 속종 때 울릉도와 독도를 침범하는 왜구를 토벌하고 숨어사는 도적을 잡기 위해 구산포에서 수군 100명을 보냈는데 이곳에서 기다리며 배가 뜰 수 있는 순풍을 기다렸다. 바람을 잘 타면 하루가 안 걸려 도착했단다. 주민들이 비용을 지원했다는 내용이 담긴 수토절목(搜討節目)이 대풍헌을 수리하면서 발견돼 당시에 독도를 실효지배하며 정기적으로 순찰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인근 촛대바위는 포토명소. 1986년 울진해안도로 산포∼진복 구간을 건설하면서 제거될 뻔했지만 절경을 보존하려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살아남았다. 바위 꼭대기에 소나무가 얹어져 촛대처럼 보이는데 도로와 딱 붙어 있어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풍경이 장관이다.
겨울바다는 이제 망양정(望洋亭)에서 절정에 이른다. 망양해수욕장 남쪽 바닷가 언덕 위 망양정에 오르자 정자의 기둥 사이로 동해의 탁 트인 절경이 한눈에 펼쳐지니 관동팔경이라 할 만하다. 망양정은 고려시대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으나 허물어져 1471년(성종 2년) 현종산 남쪽 기슭로 옮겼고 1860년(철종 11년)에 현재에 자리 잡았다.
#부처를 연못에 담은 불영사의 겨울
망양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왕피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천축산 불영사의 겨울을 만나기 위해서다. 입구의 넓은 연못에 불영사의 전경이 담겨 있는데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까지 어우러져 신비롭다. 비구니 스님들만 있는 곳으로 스님 30여명이 동안거에 들어가 아주 고요하고 새소리만 정적을 깨운다. 부처 형상이 연못에 비쳐 불영사(佛影寺)라는 이름이 붙었다. 651년(진덕여왕 5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는데 길을 가다 연못가에 잠시 앉아 쉬는데 부처의 그림자가 비쳤단다. 절을 바라보고 왼쪽산 정상에 부처바위가 있는데 마침 날이 맑아 연못에 바위가 또렷하게 떠 있다. 의상대사는 불영사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절을 짓고 다시 이곳에 돌아와 9년 동안 수도한다.
불영사에 들어서면 힘겹게 대웅보전을 떠받치고 있는 두 마리 거북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앞산이 높아 화기를 누르기 위해 돌 거북이를 건물 밑에 설치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몸통은 없고 머리만 솟아 있다. 온전하지 못한 거북이가 화마를 막지 못한 탓인지 불영사는 수차례 화재로 소실돼 다시 지어졌다. 대웅보전 안으로 들어가 상량문을 올려다 보니 반대로 목은 없고 몸통만 남은 거북이가 두 곳에 그려져 있다. 완전체가 되어 화마를 막아달라는 소망이란다. 잘 찾아야 보이니 거북이 찾기가 재미있다.
사극 드라마 같은 재미있는 옛 이야기들이 전해지는데 울진 현령 백극제의 부활 스토리가 대표적이다. 1396년(태조 5년) 부인이 삯바라지하며 공부시킨 ‘흙수저’ 출신 백극제가 어렵게 과거에 급제해 울진 현령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병을 얻어 죽고 만다. 그날 부인 꿈속에 노인이 나타나 남편의 시신을 불영사 대웅전으로 옮겨 기도를 하라고 했고 너무 억울한 부인은 대웅전 앞에서 사흘 동안 통곡하며 기도했는데 놀랍게도 남편이 살아났다. 그는 나중에 이조판서까지 지냈다고 한다.
인현왕후 얘기도 있다.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위된 인현왕후는 복위를 기다리다 지쳐 자살하려 했는데 꿈에 불영사에서 왔다는 스님이 나타나 며칠만 기다리면 복위된다고 예언했다. 실제 얼마 뒤 남인이 실권하는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서인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밀어내고 왕후에 복위한다. 이에 인현왕후는 불영사 주지스님의 얼굴을 그려 보내라고 지시했는데 꿈에 본 스님과 같았고 숙종은 19리에 걸친 땅을 불영사에 하사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