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스토리1

[스크랩] 최영미 -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대영플랜트 2007. 9. 2. 09:16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최 영 미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창자를 뒤집어 보여 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그러나 심장 한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 모르게 깨끗하다고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할 줄 안다고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그처럼 여러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자위 끝의 허망한 한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양치질할 때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다고

아예 벗어붙이고 보여줘야 하나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시집 <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 L'amour Reve / Andre Gagnon 연주 > 

 

우토로마을을살리자 빨간색 배너

http://www.utoro.net

출처 : 禪偈非佛
글쓴이 : 선게비불 원글보기
메모 :

'감동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내 향기로운 삶을 위하여  (0) 2007.09.02
[스크랩] 꼬마...  (0) 2007.09.02
[스크랩] 가을이 오면  (0) 2007.09.01
[스크랩] 친구여 허리좀 펴 보세 (펌)  (0) 2007.09.01
[스크랩] 오늘은 왠지.  (0) 2007.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