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산 탐방로에서는 만개한 진달래와 어우러진 우이도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 온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핀 날 우이도를 찾았다. 우이도하면 ‘모래언덕’이 떠오른다. 섬 속의 사막, 풍성사구. 갖은 수식어로 소개되는 우이도로 간다는 설레임과 긴장감때문에 점심도 거른 채 목포항으로 달려갔다. 우이도를 가는 유일한 방법이 12시 10분 목포항을 출발하는 섬사랑6호다. 하루에 단 한번뿐이니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차도 싣고 다니는 철부선이지만 우이도에는 차량이 다닐만한 길이 없다.
<목포항에서 하루에 단 한번 출항하는 섬사랑6호>
홍도, 흑산도를 오가는 쾌속선 사이에 정박해 있는 섬사랑6호에는 벌써 목포 나들이를 마치고 섬으로 돌아가는 섬주민들이 가득하다. 이 배는 의자대신 온돌 바닥이 선실이다. 벌써 드러누워 배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아낙들이 평일에 배낭을 들쳐 맨 일행들을 빤히 쳐다 본다. 우이도까지 가기 전에 내릴 승객들이다. 엔진 소리가 높아 가면서 배가 출항한다. 쾌속선으로는 자주 목포항을 출발해 보았지만 이 배의 속도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쾌속선은 선실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이 배는 속도가 느려 목포의 눈물이 젖은 유달산을 맘껏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이도 진리에는 조선시대에 축조한 선착장이 훼손이 되지 않은 채 잘 보존돼 있다>
몇 군데 섬을 들른 배는 마침내 3시간10분만에 우이도 진리항에 도착한다. 진리는 우이도를 대표하는 모래언덕 반대편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육지쪽 방향으로 북동쪽이다. 진리에는 우이도출장소 등 각종 행정, 편의시설이 있는 사실상 우이도의 중심지다. 그러나 모래언덕의 유명세로 차츰 무게중심이 우이도해수욕장이 있는 돈목마을로 옮겨가고 있다. 진리에는 조선 영조21년(1745년)에 축조된 선착장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잘 보존돼 있다. 우이도를 여행하려는 사람들은 진리항에서 내려 탐방로를 따라 걸어 맞은 편 우이도해수욕장으로 이동한다. 천천히 걸어도 한시간정도 걸린다. 지금은 봄철 산불방지기간이므로 이 탐방로는 이용할 수 없다.
<우이도 숲속에서 만개, 강한 향기를 내 뿜는 백서향>
진리에서 돈목마을로 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으며 특별히 탐방로를 조성하지 않아도 통행에 불편이 없는 주민들의 생활통행로 수준의 오솔길이다. 섬의 한 중간 지점인 대초리에는 폐가들이 즐비하다. 450여년 전에 들어선 마을은 인기척은 온데간데없고 무너진 돌담만이 폐가들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섬의 서쪽 방향인 돈목항에서는 서해로 지는 해를 감상할 수 있다>
진리에서 한무리의 사람과 트럭한대를 토해 낸 섬사랑6호는 돈목항으로 이동한다. 돈목항에 들어서는 선박의 2층으로 올라서니 왼쪽에 모래언덕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너른 모래사장을 거닐면서 바닷바람을 만끽하다보니 옅은 안개 탓에 해가 벌써 움츠려 들고 있다. 해수욕장을 감싸 안고 있는 바위언덕에 굳세게 살아가고 있는 소나무사이로 석양이 굴러 내려올 것 만 같다. 여독도 풀 겸, 새벽에 도리산에 일출을 보러 가자는 일행의 제안에 일찍 민박집으로 돌아 왔다. 낯선 곳이지만 바닷바람과 파도소리를 자장가삼아 우이도에서 평안한 하룻밤을 보냈다.
<도리산 정상에 오르니 여명속에 멀리 도초도의 나지막한 산군들이 발아래 펼쳐진다>
다음날, 어둠속에서 일행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일출을 보기 위해 도리산 정상(252m)을 향해 가잔다. 군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라 군사도로처럼 비포장도로가 정상을 향해 낮지만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손전등을 비추며 좌우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벗 삼아 40여 분만에 정상에 올랐다. 여명 속에서 도초도의 천금산, 금정산, 용당산 등 이 마치 지리산의 산군처럼 아스라이 발아래 펼쳐진다.
<어둠속에서 돈목항, 우이도해수욕장, 모래언덕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리산의 정상부는 군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이제는 군부대시설물이 철수되고 블록담이 깨져 평편하게 깔려있다. 사방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도리산은 쇠(牛)귀(耳)모양의 섬이란 이름에서 하나의 귀처럼 본섬에서 돌출된 곳이다. 나머지 귀는 성촌에서부터 시작한다. 도리산정상에서 보면 쇠귀모양처럼 느껴지지만 지도나 위성사진은 딱히 쇠귀모양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우이도라는 이름을 지을 때 위성사진이 있었겠는가. 그래도 서남해의 섬, 우이도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준 선조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우이도해수욕장에서 도리산으로 향하는 길목. 주민들은 길이 좁아서 병모가지라 부른다>
봄 날씨지만 새벽녘 추위는 매섭기만 하다. 일출을 보려고 시도할 때마다 그렇지만 오늘도 마음을 비우고 하늘에 맡겨본다. 해무가 일출을 감춰버린다. 아쉽지만 일출시간을 미리 확인했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자는 일행들을 설득, 하산했다. 돈목해수욕장으로 내려오는 길에 이섬 저섬을 헤아려본다. 멀리 홍도와 흑산도가 해무 속에 윤곽만 보인다. 바닷새의 번식지로 천연기념물인 칠발도가 더 가까이 보인다. 돈목항으로 내려오니 좌우로 바닷물이 탐방로를 위협하는 좁은 길목이 있다. 주민들은 길이 좁아서 병모가지라 부른다. 오른쪽의 목개라는 조그마한 해수욕장은 주민들이 감추어놓은 해수욕장이라 한다. 워낙 좁기 때문이다.
<우이도 해변에서는 갖가지 바다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굵은줄격판담치와 조무래기따개비(맨위), 거북손, 해변말미잘, 무늬발게(아래 왼쪽부터)>
아침식사 후 우이도해수욕장을 걸어 모래언덕으로 향했다. 썰물이라 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졌다. 정말 천지가 모래인 것 같다. ‘우이도 처녀들은 모래 서말을 먹고 시집간다’는 속설이 이해가 간다. 해안식물들도 모래를 뒤집어 쓰고 있다. 번행초, 갯메꽃이 모래밭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모래가 날아갈까봐 전전긍긍하는 꼴이다. 모래언덕은 침식이 심해 지난해부터 탐방객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일부 탐방객들이 눈썰매 타듯 모래썰매를 실컷 탄 것도 침식의 이유중에 하나다. 아쉽지만 모래언덕이 회복될 때까지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서운함을 간직한 채 성촌마을로 가는 해안길을 따라 이동했다. 바위틈을 살펴보니 각종 바다생물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었다. 굵은줄격판담치와 조무래기따개비, 거북손, 해변말미잘. 무늬발게는 일광욕을 즐기려고 바위위에 나와 있다가 인기척에 재빨리 도망간다.
<우이도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모래언덕. 더 이상의 침식을 막기 위해 출입할 수 없다>
성촌마을은 모래언덕 뒤편에 위치한다. 마을입구와 인가 주변이 온통 모래투성이다. 그래서 모래언덕에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돈목마을 청년과 성촌마을 처녀의 슬픈 사랑이야기다. 두 연인이 바람과 모래로 변해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촌해수욕장에서 바람에 실려 모래언덕으로 올라오는 모래량이 적고 탐방객들의 무질서로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다. 주민들이 ‘산태’라 부르는 이 모래언덕이 다시 태산처럼 커지길 기원해 본다.
섬사랑6호의 뱃시간에 쫓겨 1박2일의 일정을 끝내고 우이도를 떠난다. 왠지 허전한 마음이 배가 만들어 내는 포말처럼 끈질기게 일행들을 따라오는 것 같다. 바로 정약용, 정약전 다산형제와 우이도에 대한 얘기를 못 나누고 떠나온 것 같다. 비록 이렇다할 유적지는 없지만 흑산도 사리에서 유배를 시작한 정약전이 우이도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백과사전인 ‘자산어보’와 우이도 사람 문순득의 표류기인 ‘표해록’도 저술했다. 섬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춰 진정한 ‘섬마을선생님’이었던 정약전을 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사이에 배는 벌써 비금-도초간 연도교 사이를 지나고 있다. 꼭 다시 찾아보고 싶은 곳이 또 생겼다.
홍보전산실 오영상(oyss@knps.or.kr)
◐ 교통정보 <1>자가용 * 경부고속도로 : 서울TG-광산IC-목포-목포여객선터미널 * 서해안고속도로 : 서서울TG-목포IC-목포여객선터미널
<2>고속버스 서울호남선터미널-목포(4시간 20분 소요)-목포여객선터미널
<3>KTX 용산역-목포역(3시간 20분소요)-목포여객선터미널
◐ 탐방정보 * 국립공원관리공단 다도해서부사무소(061-284-9115) * 신안군청 문화관광과(061-243-21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