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스크랩] 오른손

대영플랜트 2013. 9. 23. 20:46

    
    
    오른손  / 원태연    
    내가 어떤 여자를 끔찍히 사랑해 주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는, 
    충분히 미쳐 있던 상황에서도 어떤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던 
    오른손을 모질게 내려버리고 돌아서 버린 것입니다. 
    그 다음 순간부터 그렇게 모질게 내려졌던 오른손은 
    더 이상 나를 위해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나를 위해 수저를 들던 일도, 칫솔질을 하던 일도, 
    운전대를 잡던 일도 모두 잊은 듯, 
    빈 술잔을 채우는 일과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 외에 다른 
    모든 움직임을 멈춰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는 더 이상 오른손에게 
    나를 위해 움직여 주기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나만을 위해 움직여 주기를 바라기에는 
    어떤 여자의 눈물을 한 번 만 더 닦아주고 싶어 했던 오른손에게 
    나는 너무나 모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발 이러지 마. 
    그렇게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미쳐가고 있어. 
    어떤 여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오른손은 고맙게도 
    하던 일을 멈추고 술잔을 채워주었고, 
    그 술잔을 다시 비웠을 때 내가 울었는지 오른손이 울었는지 
    충분히 젖어버린 손 끝으로 새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압니다.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귓볼, 그 머리칼, 
    그 손길이 얼마나 다정했었는지를. 살아오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고 
    살아가면서 두 번 다시 받아볼 수 없다는 것을…….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나는 오른손에게 모질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른손이 써버리는 편지에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숨을 쉰다고 다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어떤 여자에게 알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오른손은 다시 어떤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고 
    두 인생은 평생을 젖어 있는 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우린 한 번이라도 마주치겠지만 그날까지 나는 
    움직임을 멈춰버린 오른손에게 그 어떤 움직임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우연이 날 피해 가 오른손이 평생을 안 움직인다 해도 나는 
    오른손을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연이 날 돕는다면 
    그때는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참아내겠지만, 
    가슴이 다시 한 번 내려앉아도 나는 참아내겠지만 
    오른손에게 또 내 눈물만 훔쳐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귓볼, 그 머리칼, 그 손길을 그날까지 못 잊고 내가 모질게 잘라내도, 
    이번에도 싫다하면 그때는 나로서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떤 여자를 끔찍히 사랑해 주었다는 뚜렷한 증거는, 
    충분히 미쳐 있던 상황에서도 어떤 여자의 눈물을 닦아주려던 
    오른손을 모질게 내려버린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도 사랑했던 어떤 여자를 다시 한 번 
    만지게 된다면 나는 이미 미쳐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흐르는 곡 : Tears / The Dayd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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