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우소 (세상사 이야기)

고개에 올라서니

대영플랜트 2014. 4. 7. 21:24

 

 

 

 

토요홀아비 일요과부

 

지천명이라고 하는 오십대가 까마득한 줄로만 알았는데 눈 깜박 할 사이 고지에 오르고 말았다.

보통 정상에 오르면 무척이나 기뻐 “야호”를 외치곤 한다. 탁 트인 시야와 함께 펼쳐진 풍광에 저절로 나오는 함성인 것이다.

그동안 함께 한 시간보다 따로 한 시간이 더 많다.

같이 움직인 것은 집안 행사나 명절 시골 갈 때가 전부인 것 같다. 

토요일은 내가 홀아비, 일요일은 아내가 과부가 된 것이다.

 고지를 넘으면 넘을수록 ‘야호’가 아니라 ‘아이고’다.

 

새벽 같이 나가 저녁 늦게 귀가 하다보면 얼굴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다.

아이들도 머리통이 커지다보니 귀가시간이 불규칙하다.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하루 종일 뿔뿔이 흩어졌다 돌아와도 삶의 방식이 다르다 보니 얼굴보기가 가뭄에 콩나듯 하다.

부부 역시 피곤하여 귀차니즘에 빠지다 보면 소 닭 보듯 한다. 잠자리 역시 정해진 곳이 없다.

아이들 공간은 철옹성 같은 요새로 접근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다.

꼭꼭 닫고 사는 가족의 마음이 열리기는커녕 꽁꽁 얼어만 가는 것 같다.

 

도시나 농촌이나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살기 어렵다.

외벌이로서는 육칠십년도 보리 고개를 넘는 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매달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각종 공과금에 허덕이다 보면 보리 고개를 넘어야 하는 힘겨운 삶은 반복된다.

물질문명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만큼 욕망도 커졌기 때문이다.

삶이 팍팍하다 보니 주말에는 의례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자연인으로서 자유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주말에 바람 쏘이는 것,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니다.

삼사십 대는 아이들에게 시달려 변변한 나들이 한번 못했다.

지천명이란 고지에 올라서야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걸어온 길이 순탄한자만이 만끽 할 수 있는 여유인 것이다.

자그마한 우환이라도 발생하면 이순이 된다 한들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다 보면 쌀이 줄어드는 것조차 모르고 산다.

 밥상차리는 것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 챙겨먹는 버릇을 들여 그나마 아내의 손길을 덜었다.

각자 자급자족하기로 일찍이 다짐을 하고 실천에 옮긴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 챙겨먹고 드나든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주말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아내는 주말에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다.

마땅히 취미 활동이 없어 우울하게 보냈던 과거와는 달리 활기를 되찾았다.

하루 종일 신나게 타고 와서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달갑지 않게 생각해도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취미로 굳어진 것 같다.

저울에 올라가 어쩔줄 몰라 한다. 숫치가 제법 내려 간 것 같다.

이렇게 좋은 취미도 이틀을 할 순 없다.

하루 종일 매진해도 모자라는 집안일을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부간에 취미가 같아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 다른 취미로 시간을 달리하여 건강과 심신을 달련하는 것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토요홀아비와 일요과부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