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삶

낙타의 등을 부려뜨리는 것은 마지막 한올의 지푸라기 이다.

대영플랜트 2014. 9. 1. 21:59

 

 

잘 지내던 배우자 "더 이상 못 살겠다"

그 한 마디의 속내는?헬스조선 | 기고자 박미령 | 입력 2014.08.29 17:38

 

이혼 조정에 실패한 한 40대 부부가 상담실을 찾아왔다. 결혼 15년차였다. 이혼을 요청한 것은 아내였다.

 

사업하는 남편이 돈이 융통이 안 돼 두 달 째 아내에게 생활비를 못 준 것이다.

 

전에도 생활비를 몇 달 건네지 못한 적이 종종있었지만 아내가 어떻게든 살림을 꾸려갔고,

 

생활비 문제는 사업이 풀리면 곧 해결되었다.



↑ [헬스조선](사진=헬스조선DB)



그러던 아내가 갑자기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다"고 이혼서류를 내민 것이다.

남편은 "매번 반복되던 일이고, 그동안 잘 견디며 살아오지 않았느냐.

 겨우 두 달 생활비 가지고 그러는 것이냐"며 의아해하고 화를 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이제 지쳤다고 했다.

또 얼마 전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 때문에 슬픔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남편은 아내의 지치고 슬픈 마음은 전혀 눈치 채지못한 것이다.

남편이 한 번만 봐달라고 매달려도 소용없었다. 아내는 이미 마음을 굳게 닫은 상태다.

이 부부 사례에서 보듯,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어떤 특정한 일 때문에 이혼하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다.

부부 문제에서 가장 큰 갈등을 빚는 외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의 갑작스러운 외도 때문에 이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는 '쌓이는 것'이다.

 혈관에 조금씩 쌓이던 기름이 결국 혈관을 막는 것처럼,

 평소에는 그럭저럭 참고 견딜 만하던 갈등이 쌓여서 부부관계를 파경으로 이끈다.

위 사례의 아내도 평소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못할 때도 그냥저냥 살만했다.

자신이 부업을 하기도 했고,

큰 돈이 한 번에 들어올 때도 있어 그 돈을 아끼며 몇 개월치씩 나눠 가며 살림을 꾸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고마워 했고, 자신의 알뜰함에 스스로 뿌듯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친정 어머니의 죽음, 그 가운데 보여준 남편의 무심한 모습,

생활비를 못 주면서도 당연히 알아서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태도 등이

예전엔 견뎌 넘기던 상황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핵폭탄으로 키운 것이다.

 상담할 때 나는 '낙타의 등 위에 올려진 마지막 지푸라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낙타 등 위에 짚더미를 싣는데,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것은 마지막으로 올린 한 올의 아주 가벼운 지푸라기라는 것이다.

살다 보면 배우자가 지고 가는 짐에 지나치게 무심해진다.

 반면 배우자가 가진 장점은 시간이 갈수록 저평가 되고 나중에는 당연시된다.

 위 사례에 등장하는 남편은 아내가 인내심 많고 착하고 알뜰하기 때문에 결혼했을지 모른다.

그런 아내의 장점이 처음에는 물론 고마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당연하게 여기다 나중에는 아내가 착하게 참지 않으면 화가 나는,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러분은 부부 사이에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마지막 지푸라기'는 없는지 돌아보자.

생활비를 못 가져오는 무능한 남편처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매일 늦게 귀가하는 남편, 아이 교육은 아내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편, 시부모 간병에 무심한 아내,

 돈 버는 일은 당연히 남편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내 등 사소한 인식의 차이가 마지막 지푸라기를 만들 수 있다.

부부관계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은 없다. 모든 일이 '해줘서 고마운' 일이다.

아내 혹은 남편의 짐이 무거워지고 있는 것은 낯빛에 드러난다.

눈빛에서 표정에서 깊은 우울감이 배어 나온다. 이혼을 선택하면 오히려 다행이다.

 "우리 남편(아내)은 변하지 않을 사람이다.

이는 어차피 벗어나지 못할 운명"이라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많다.

강한 힘으로 눌려 있던 용수철이 더 높이 튀어 오르듯 참은 세월만큼 반발은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 [헬스조선]박미령

↑ [헬스조선]박미령

늘 당연히 지나오던 배우자의 얼굴을 한번 관심 있게 바라보자.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얼굴에서 우울함이나 그늘이 느껴지지 않는가.

 

뒤돌아가는 어깨에서 무거운 삶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짐을 좀 덜어 줄 때가 된 것이다.

 

아무리 인내심이 장점이던 사람이라도 10년 넘게 보상 없이 참아야 하는 삶은 힘겨울 수밖에 없다.

배우자에게 특별한 보상이란 없다. 남편이, 아내가 인정해 주고 고마워하면 그것이 보상이다.

 

위 사례의 아내도 남편이 친정 어머니를 여읜 아내의 슬픔을 잘 보듬어 주면서,

 

생활비 못 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면,

 

늘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이겨내는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면 이혼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고,

 

좋은 곳으로 여행 떠나고, 비싼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두 번째 신혼'에 성공하는 방법이 아니다.

 

15~20년간 삶의 무게를 함께 견뎌온 남편이나 아내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는 노력이 먼저다.

 

이런 노력이 모이다 보면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참지 않는,

 

평등한 관계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것이다.

"부부관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배우자의 외도 역시 단 한 번에 이혼을 부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배우자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작은 어려움 등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견디지 못하고 이혼으로 이어진다."


박미령

서울대 농가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가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20여 년간 '결혼과 가족'이란 주제로 강의해 왔다.

 

현재 '향기나는 가족치료연구소' 소장으로서 '부부교육 훈련' 프로그램과 '부부 대화법' 등을 교육한다.

 

또 성남가정법률상담소 교육원장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가사전문 상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월간헬스조선 8월호(182페이지)에 실린 기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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