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불여일행] '세상과의 이별' 임종체험, 관속의 10분은 아찔했다
“아저씨, 다시 찍으면 안 될까요?”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하니 좀 더 환하게 웃고 싶었다. 입 꼬리만 살짝 올린 어색한 미소는 아무래도 좀 찜찜했다.
인상이 좋은 사진사 아저씨는 앞니가 보이는 두 번째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며 OK사인을 해주셨다.
지난 토요일, 영등포구 효원힐링센터. 35명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앉았다.
엄마를 따라 온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얼굴이었고,
친구들끼리 온 대학생들은 긴장한 기색 없이 마냥 즐거워 보였다.
반면 중년 부부는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기색이었다.
‘죽음’에 대한 짤막한 영상을 보고 나오니 좀전의 나는 ‘영정사진’이 돼있었다.
사진 속 나는 즐겁게 웃고 있었지만, 검은 테 하나에 마음 한쪽이 찡해진다.
“지금부터는 말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안내자를 따라 한 줄로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갔다.
저승으로 가는 계단이라더니 오싹하다.
계단을 올라 장례식장을 연상하게 하는 체험관으로 들어서니 관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관 위에는 수의(壽衣) 한 벌이 올려져있다. 내가 누울 관 옆에 자리를 잡고, 차분하게 유언장을 써내려갔다.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떠오르는 건 가족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밥 한 술 뜨고 가라’는 엄마의 말에 늦었다며 입을 삐죽거린 게 미안했다.
‘딸 얼굴 좀 보자’는 아빠의 말에 따뜻하게 답하지 못한 것도 생각났다.
새삼 잘못한 행동들과 고마운 사람들이 떠오른다. 마지막 순간에야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고, 고마움을 전한다.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 한솔(가명·17)이는 “우울증이 심했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지막 순간이 되니 부모님께 죄송하기만 하다.
힘들었던 순간들, 나를 일으켜주었던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하고 싶다”며 흐느끼며 유서를 읽었다.
용기를 내 사람들 앞에서 유서를 낭독한 4명 모두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엄마이자 아내로 힘들었지만 행복했다”고 말하는 아주머니,
“능력 있는 남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를 믿고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고 고백하는 아저씨,
“하나뿐인 남동생에게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하는 청소년까지. 마지막 순간엔 ‘가족’이 있었다.
죽기로 한 시간. 수의를 입고 관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쾅. 쾅. 쾅’ 큰 소리로 관 뚜껑이 닫혔다.
숨이 막혀오는 어둠. 관 속의 10분은 바깥과는 달랐다. ‘나가고 싶다’는 간절함을 참을 수 없었지만 애써 진정하려 했다
. 약속한 10분이 지나고,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관 뚜껑이 열렸다. 눈부심이 감사했다.
“관 속에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을 내려놓고 나오시는 겁니다.
안 좋았던 기억은 모두 버리고,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하세요.
” 직접 체험한 ‘죽음’. 무한정 계속될 것 같은 삶이 어느 순간 멈출 수도 있다는 생각은 실제처럼 아찔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씁쓸하다.
10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3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임종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번 교육을 담당한 강사는 “과거를 극복하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을 앓았던 분들, 부부나 가족관계에 문제를 느끼는 분들이 많이 오신다.” 며
“무료지만 ‘삶의 용기를 얻어간다’며 밝아진 표정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주변에 힘들어하시는 분, 삶에 활력을 얻고 싶은 분이 있다면
함께 와보시면 좋은 체험이 될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효원힐링센터(www.hwhealing.com, 1644-3350)는 사전예약을 통해 임종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체험비용은 무료이며 가족이나 단체신청도 가능하다.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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